세 남매 이야기
성경에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남매가 있습니다. 바로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세 남매입니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부모님이 영적 지도자를 잘 따르고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어서,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나 사모하는 자들이었고, 동시에 주님과 제자들을 매우 잘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집에 자주 초대했고, 음식을 대접하며,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식사대접을 하던 어느 날, 음식 대접하기를 유독 좋아하던, 마르다가 분주하게 주방에서 들락날락 할 때, 주님은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계셨고, 마리아는 꿀송이 같은 주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 언니를 도울 생각도 잊어버린 채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이에 언니 마르다는 화가 났고,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주님, 저는 이렇게 고생하며, 음식을 준비하는데, 마리아는 이렇게 주님 말씀만 듣고 편히 앉아 있습니다.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마리아에게 절 도우라고 하세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리아를 책망하기는 커녕,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무 잘하려고 이것 저것 많이 준비하다가 괜히 마음 상하지 말고, 그냥 간단하게 해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선택했으니 그냥 놔둬라”고 하시며,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님과 제자들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여, 늘 대접하고자 애썼던 세 남매, 특히 마르다와 마리아의 귀한 헌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하는 헌신의 시작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을 대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그것이 기본이며,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에 헌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마르다는 음식보다 섬기는 일보다 그저 하나님 말씀을 더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하나님 말씀을 더 사모하는 자가 더 큰 믿음과 헌신을 하게 됨을 몸소 증명하는 두 사건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 나사로가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람을 보내어 주님을 모셨고,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상하게도 서두르지 않으셨고, 결국 도착하시기도 전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성격 급한 마르다는 주님이 조금 더 일찍 오셨었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대화 중에 마르다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은 더욱 깊고 완전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세 남매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고,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제자들을 더욱 열심히 섬겼고,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숙식하시도록 집을 오픈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리아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온전히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반드시 있음을 몸소 증명하였습니다.
이후 마리아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 극에 달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순전한 나드 한근, 당시 가치로 500 데나리온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사건입니다.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가 잔치를 베푼 어느 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마르다는 분주히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사로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자신이 다시 살아난 간증을 나누고 있었으며, 마리아는 예수님을 옆에서 마치 비서처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다 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주님께서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고,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슬펐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마치 장례에 향유를 사용하듯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의 헌금주머니를 맡아 관리하던 가룟유다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았다고 마리아를 비난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헌금 주머니에서 몰래 꺼내 쓰곤 했는데, 자신이 몰래 챙길 돈이 아까워 그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하는 헌신도 하나님 말씀을 깊이 이해할 때 가능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헌신도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자기를 위한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뜻과 명령 가운데, 성령이 주시는 감동 가운데 하는 헌신은 마치 마리아가 그저 예수님의 말씀대로 헌신하다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지극한 헌신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예수님의 복음과 재림을 준비하는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실 만한 아름다운 헌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헌신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의 헌신도 말씀에 순종하는 헌신이어야 합니다.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헌신 가운데,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수고와 헌신도 분명히 있습니다. 헌신도 하나님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한 헌신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고도 거룩한 헌신만 받으십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세 남매의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과 헌신을 닮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감사한인교회의 모든 섬기는 직분자들이 모두 말씀을 사모하고 지극한 헌신을 하였던, 마리아의 모습을 닮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세 남매 이야기
성경에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남매가 있습니다. 바로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세 남매입니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부모님이 영적 지도자를 잘 따르고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어서,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너무나 사모하는 자들이었고, 동시에 주님과 제자들을 매우 잘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집에 자주 초대했고, 음식을 대접하며, 주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식사대접을 하던 어느 날, 음식 대접하기를 유독 좋아하던, 마르다가 분주하게 주방에서 들락날락 할 때, 주님은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계셨고, 마리아는 꿀송이 같은 주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 언니를 도울 생각도 잊어버린 채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이에 언니 마르다는 화가 났고,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주님, 저는 이렇게 고생하며, 음식을 준비하는데, 마리아는 이렇게 주님 말씀만 듣고 편히 앉아 있습니다.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마리아에게 절 도우라고 하세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마리아를 책망하기는 커녕,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무 잘하려고 이것 저것 많이 준비하다가 괜히 마음 상하지 말고, 그냥 간단하게 해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선택했으니 그냥 놔둬라”고 하시며,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님과 제자들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여, 늘 대접하고자 애썼던 세 남매, 특히 마르다와 마리아의 귀한 헌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하는 헌신의 시작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을 대접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그것이 기본이며,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에 헌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마르다는 음식보다 섬기는 일보다 그저 하나님 말씀을 더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하나님 말씀을 더 사모하는 자가 더 큰 믿음과 헌신을 하게 됨을 몸소 증명하는 두 사건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 나사로가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람을 보내어 주님을 모셨고,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상하게도 서두르지 않으셨고, 결국 도착하시기도 전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성격 급한 마르다는 주님이 조금 더 일찍 오셨었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대화 중에 마르다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은 더욱 깊고 완전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세 남매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고,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제자들을 더욱 열심히 섬겼고,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숙식하시도록 집을 오픈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리아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온전히 믿고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반드시 있음을 몸소 증명하였습니다.
이후 마리아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 극에 달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순전한 나드 한근, 당시 가치로 500 데나리온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사건입니다.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가 잔치를 베푼 어느 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마르다는 분주히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사로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자신이 다시 살아난 간증을 나누고 있었으며, 마리아는 예수님을 옆에서 마치 비서처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다 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주님께서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고,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슬펐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마치 장례에 향유를 사용하듯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의 헌금주머니를 맡아 관리하던 가룟유다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았다고 마리아를 비난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헌금 주머니에서 몰래 꺼내 쓰곤 했는데, 자신이 몰래 챙길 돈이 아까워 그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 하는 헌신도 하나님 말씀을 깊이 이해할 때 가능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헌신도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자기를 위한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뜻과 명령 가운데, 성령이 주시는 감동 가운데 하는 헌신은 마치 마리아가 그저 예수님의 말씀대로 헌신하다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지극한 헌신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예수님의 복음과 재림을 준비하는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직접 받으실 만한 아름다운 헌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과 헌신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의 헌신도 말씀에 순종하는 헌신이어야 합니다.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헌신 가운데,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수고와 헌신도 분명히 있습니다. 헌신도 하나님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한 헌신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고도 거룩한 헌신만 받으십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세 남매의 말씀을 사모하는 믿음과 헌신을 닮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감사한인교회의 모든 섬기는 직분자들이 모두 말씀을 사모하고 지극한 헌신을 하였던, 마리아의 모습을 닮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