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이 말씀이 성경 말씀이었어?”라며 놀라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초대교회 시기에 구제는 교회 사역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도왔습니다. 당시에는 일도 많지 않았고, 직업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 가정에 남편이 뜻밖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 아내들과 자녀들은 굶어야 했습니다. 특히, 전쟁 혹은 뜻밖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끔찍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고아와 과부들을 위주로 적극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간혹 교회에는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처지, 혹은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 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디모데전서에 사도 바울은 교회가 적극적으로 돕고 후원해야 할 참 과부와 도움을 줄 이유가 없는 거짓 과부를 구별할 것을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대략적으로 참과부의 조건은 6가지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선한 행실로 인정받는 자”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0절에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자녀를 양육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의 발을 씻기며 환난 당한 자를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힘쓴 자라야 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도리어 도움을 주고자 하는 과부를 참 과부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을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한 일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여러가지 사역들이 그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도 은퇴를 인정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이 50세에 은퇴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퇴는 직업적 은퇴 일 뿐,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은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증거합니다. 실제로 일을 해야 하는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신앙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모든 사람은 일할 의무가 있다 게으름과 구걸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와 섬김의 표현이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다. 노동 속에는 의지(will)와 노력(effort)이 모두 필요하며, 이 둘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게으름이나 타인의 노동에 의지만 하는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섬길 때, 자랍니다. 신앙은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할 때,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그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삶의 보람과 건강 때문입니다. 1979년에 하버드 대에서 아주 특이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 실험의 주최자는 엘런 랭어라는 박사였는데, 실험 제목이 “시계 거꾸로 되돌리기 연구(Counterclockwise Study)”였습니다. 실험은 70-80대 노인 여덟 명을 대상으로 하여, 오래된 수도원을 20년 전인 1959년 분위기로 꾸며 놓고, 그분들로 하여금 50대 시절 하던 여러가지 일을 하며 지내도록 하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이 지났는데, 8분의 시력, 기억력, 근력 등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신체 나이를 측정한 결과 이전보다 젊어졌다는 진단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바쁘게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뿐 아니라, 또한 가족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다 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이 말씀이 성경 말씀이었어?”라며 놀라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초대교회 시기에 구제는 교회 사역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도왔습니다. 당시에는 일도 많지 않았고, 직업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 가정에 남편이 뜻밖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 아내들과 자녀들은 굶어야 했습니다. 특히, 전쟁 혹은 뜻밖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끔찍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고아와 과부들을 위주로 적극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간혹 교회에는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처지, 혹은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 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디모데전서에 사도 바울은 교회가 적극적으로 돕고 후원해야 할 참 과부와 도움을 줄 이유가 없는 거짓 과부를 구별할 것을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대략적으로 참과부의 조건은 6가지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선한 행실로 인정받는 자”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0절에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자녀를 양육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의 발을 씻기며 환난 당한 자를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힘쓴 자라야 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도리어 도움을 주고자 하는 과부를 참 과부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을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한 일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여러가지 사역들이 그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도 은퇴를 인정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이 50세에 은퇴할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퇴는 직업적 은퇴 일 뿐,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은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증거합니다. 실제로 일을 해야 하는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신앙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모든 사람은 일할 의무가 있다 게으름과 구걸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와 섬김의 표현이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다. 노동 속에는 의지(will)와 노력(effort)이 모두 필요하며, 이 둘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게으름이나 타인의 노동에 의지만 하는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섬길 때, 자랍니다. 신앙은 수고와 헌신과 희생을 할 때,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그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삶의 보람과 건강 때문입니다. 1979년에 하버드 대에서 아주 특이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 실험의 주최자는 엘런 랭어라는 박사였는데, 실험 제목이 “시계 거꾸로 되돌리기 연구(Counterclockwise Study)”였습니다. 실험은 70-80대 노인 여덟 명을 대상으로 하여, 오래된 수도원을 20년 전인 1959년 분위기로 꾸며 놓고, 그분들로 하여금 50대 시절 하던 여러가지 일을 하며 지내도록 하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이 지났는데, 8분의 시력, 기억력, 근력 등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신체 나이를 측정한 결과 이전보다 젊어졌다는 진단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바쁘게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뿐 아니라, 또한 가족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다 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