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습관

습관


30-40년 전부터, 크리스천들 사이에는 습관이라는 단어가 터부시 되어 왔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기독교 역사가 100년에 돌입하면서, 기독교적 문화와 관습에 젖어, 맹목적인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후손이 3-4대, 현재는 기독교 역사가 140년이 되었으니, 5대에서 많게는 6대까지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기독교에는 ‘모태신앙’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믿음의 어머니 뱃속에 있었으니, 자녀까지도 신앙이 있었다고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표현은 초대교회에는 찾아볼 수 없으며, 신앙의 역사가 수백 수천년인 유럽과 미국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표현입니다. 미국에는 기도의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을 믿음의 조상으로 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미국 현지인들 가운데,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신앙이 있었다고 자랑하는 분을 본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친해지고 난 뒤, 그 사람이 미국에 있었던 대부흥 운동의 주역이었던 유명한 목사님의 후손이었음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물론, 영적인 관점에서 어머니가 성령으로 충만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한 경우, 뱃속의 아기가 어떤 영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세례 요한이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을 때, 어머니가 받은 성령의 은혜로 태중에서 뛰어놀았고, 아기 예수를 가진 마리아를 만났을 때, 아기끼리 서로 교감한 듯한 묘사가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와 할머니 로이스의 신앙을 언급하며, 디모데의 신앙이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신하며, 칭찬하였습니다. 말씀의 아버지, 믿음의 어머니를 모신 일은 정말 귀한 축복이자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하신 기도들이 쌓여 있고, 동시에 어릴 때부터, 신앙의 모습을 학습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배운 대로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듯이 신앙도 부모의 신앙을 닮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도 그러한 신앙의 가정이 몹시 부럽습니다. 그리고 제 가정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신앙의 문화와 습관 전통을 만들고자 애써왔습니다. 제 자녀들이 3대인 셈인데,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저의 손주, 즉 4대에는 하나님의 사명이라면, 하나님 말씀이라면, 목숨을 거는 걸출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조상을 둔 후손들이 조상의 신앙을 감사히 여기고, 그러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것을 자랑스러워 하기 전에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2가지 진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과연,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정말 훌륭하고도 모범적인 신앙인들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분들은 정말 교회를 사랑하고, 영적 지도자들을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 나라의 일에 헌신하고, 하나님께 십일조와 감사 헌물을 정직하게 드리며, 교회의 부흥과 선교와 전도에 헌신하였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만약, 믿음의 조상이 귀한 신앙인들이셨다면, 나는 그분들의 신앙의 모범을 그대로 물려 받고, 배운 습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저는 신앙의 명문 가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가정들을 보면서, 그들 가정에 고착된 영적인 습관과 문화적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1) 첫번째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부모나 형제에게 기도 요청을 하며, 스스로도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늘 성경을 읽습니다. 2) 두번째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비난을 일삼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 긍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아는 2세 한인이 백인 변호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 백인 변호사의 가정은 10대 이상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라고 합니다. 처음 시부모님을 만났는데, 얼마나 자신을 아껴주는지, 만날 때마다, “하니, 알 유 오케이?”라며, 속삭이듯 간지럽게 말하길래, 처음에는 가식으로 오해할 뻔했다고 합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가족 모임에서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서로 돕겠다고 난리라고 합니다. 가족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긍정적인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어서, “이 사람들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만날 때마다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고 합니다. 3) 세번째 선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돕는 습관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한인 2세와 결혼한 백인 변호사는 욕심이 없다고 합니다. 돈에 대한 걱정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시겠지”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떤 고객이 승소하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객이 자신이 승소했지만, 지금 사정이 넉넉치 않으니, 승소하여 받은 금액을 자신에게 더 주지 않겠느냐?”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법적으로 자신의 몫을 떼어가 버리면 되는 일이었는데, “당신이 그렇게 어려우면 그렇게 하십시오”라며,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아내는 남편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 고객이 아는 지인을 때마다 소개해주어서, 고객이 엄청나게 늘고 수입도 늘었다고 합니다.  4) 네번째, 하나님 일, 교회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책임지고 헌신하는 습관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일과 재정을 책임지고자 하는 주인정신과 책임감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시골에 교회를 건립하기 위해 벽돌을 직접 날랐고, 그러한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5)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나 선교사와 같은 종들을 사랑하여, 아끼고, 적극 후원하고, 섬기며 대접하는 습관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만약, 위의 5가지 중에 적어도 3가지 이상이 여러분의 가정에 정착되어 있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신앙의 명문가정화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입니다.


앞서 저는 습관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경계해온 습관이라는 것은 주일에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행사를 잘 지키는 정도의 어설픈 기독교적 습관과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의미 없이 맹목적으로 어설픈 습관과 문화로 만족하며 신앙 생활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정성 있고, 확고한 신앙의 습관과 문화는 강력한 파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기도하며 교통하는 사람은 성령에 충만합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지혜와 계시의 영이 충만해집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지극히 섬기면,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더욱 귀한 일을 그에게 맡겨 주십니다. 맡겨진 작은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크고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은 진실된 신앙인입니다. 그런 개인 그런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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